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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상에는 나 보다도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데, 내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 되는데….”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수십년간 소리없이 선행을 실천해온 경기 사강신협 이성태 이사장을 만났다. 딱히 특별한 동기가 있어 남을 돕기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60년대 지역 내 정신질환자, 걸인, 무의탁 노인들을 자연스럽게 돕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단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당시 의료혜택을 받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더군다나 경제능력이 없는 걸인이나 무의탁 노인들의 경우 몸이라도 아프면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는 병자들을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려주고 떼를 쓰다시피 치료를 간곡하게 부탁했다. 물론 이 이사장 본인의 사비도 병원비에 고스란히 사용됐다. 이런 일이 빈번하자 병원에서는 전문적인 ‘꾼’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요즘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몇몇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병원보다 먼저 그를 찾아와 진료 요청을 하곤 한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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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이 이사장에게서 돌아온 답은 ‘천성’이라 했다. 남을 돕지 않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 남을 도와야 자기 도리(道理)를 한 것 같은 마음. 그것이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자기 인생의 ‘기쁨’이자 ‘자기 삶의 몫’이라고 한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한 사람들 중 희망자 100여 명에게 음성 꽃동네 입소를 중재해 주었다. 그들의 입소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일일이 손수 챙겨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연고가 없거나 마땅히 장례를 치를 만한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의 장례도 그의 몫이었다. 그 수 또한 1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91년 사강성당 교우의 땅을 기증받아 ‘사강보금자리’라는 양로원 시설을 사비를 들여 개원해 정신지체 또는 무의탁 노인들을 직접 돌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최근 4년 전부터는 성빈센트 뽈 ‘자비의 수녀회’가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그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 커 보이는 것은 정작 본인이야말로 22년 째 심부전증을 앓아 심장 박동기를 부착하고 있으며, 4년 전에는 직장암으로 수 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내 몸이 힘들고 고단하더라도, 그래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또한 나는 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개인적인 위로도 많이 받았으니 오히려 많은 것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라며 오히려 감사해한다.
이사장 임기가 끝나게 되면 사강보금자리로 다시 돌아가 그동안 소홀(?) 했던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성태 이사장. 가진 것이 없어서, 건강하지 못해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나눔에 인색한 우리에게 그는 이웃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 |